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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제물

2010-02-19 00:37:16   , 12224 조회

written by 김윤채

우리들은 각자 다른 위치에서 삶을 살다가 성모님의 특별한 부르심으로

2월, 기도와 찬미의 밤에 참석하신 것, 감사해야지요?

오늘 기도와 찬미의 밤에 폭포수와 같은 은혜가 내릴 것을 믿습니다.

구약과 신약에 흐르고 있는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봉헌을 하려면 살아있는 제물을 바쳐야 한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신자들이 가지고 오는 제물 가운데

심장이 멈춰있는 죽은 짐승은 받지 않았지요.

심장이 펄펄 뛰는 살아있는 제물만 받았어요.

신약적인 의미로 살아있는 제물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많은 신자들이 기도한다고 하면서 죽은 기도를 할 때가 참 많아요.

많은 신자들이 미사를 드리면서 죽은 미사를 드릴 때가 참 많아요.

많은 신자들이 봉사를 하면서 죽은 봉사를 할 때가 참 많아요.

의학용어 중에 혼수상태라는 말이 있지요?

미사 시간 내내 몸뚱아리는 성당에 앉아 있는데

머릿속은 한 시간 내내 딴 동네를 빙빙~ 돌아다닌다 이거지요.

이건 혼수상태에 빠져서 드리는 미사예요.

성당 문 열 때부터 나갈 것 생각하면서 들어오는 그 사람은

나가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에 강론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계속 시계만 쳐다보고 있어요.

그렇게 죽은 상태, 뇌사상태에서 빠져 하는 미사는

하루에 열 대를 드려도 하느님 앞에 올라가지 않는다~ 그 뜻입니다.

우리들은 그래도 기본적으로 묵주기도 5단 씩은 바칩니다.

묵주기도 5단, 얼마나 깨어서 분심 없이 해 본 적이 몇 번이나 됩니까?

처음에는 괜찮게 나가다가도 하다가 보면 손은 자동으로 돌아가는데

나도 모르게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성서 봉독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은 참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많은 경우에 죽은 삶을 살 때가 많아요.

여기 오기까지 살아 깨어서 보내셨습니까?

저는 자신에게 늘 질문합니다.

‘김웅열, 너는 정말 살아있는 사제냐~ 죽은 사제냐!’

그게 제 화두예요.

사제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드리는 미사는 힘이 있고

그 미사를 통해서 신자들이 하느님을 볼 수 있지만

사제가 죽어 있는 상태에서 미사를 드린다면

신자들이 사제를 보고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인가!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심장만 뛰는 있는 것이 아니라

영이 살아 있고, 깨어 있어야 되요.

여러분들, 아마 신부님들 많이 겪으셨을 거예요.

걱정스러울 정도로 죽어 있는 사제도 여러분들 보시고 살 거예요.

‘우리 신부님 얼굴에 기쁨이 없고 뜨거운 것이 하나도 없다!’

신자들이 누구보다도 잘 알지요.

유니폼만 입었다고, 제의만 걸쳤다고, 로만 칼라 했다고

살아 있는 사제가 아닙니다.

그건 수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녀원에 가서 피정을 시켜보면 드러나요.

살아 있는 수도자의 얼굴과 상처가 많은 수도자들의 얼굴은 보면 달라요.

뒤에서 보면 베일을 쓰고 있기 때문에 똑같아 보이지만

얼굴은 영혼의 창이기 때문에 절대로 속일 수가 없지요.

저는 최근에 살아있는 사제를 한 사람 만난 적이 있습니다.

세속에서는 그 사제를 가리켜서 ‘수단의 슈바이처신부’

지금부터 한 달 전에 11시 순례미사를 드리고 있는데

미사가 한 20분 정도 지났을 때, 저 뒤에 문이 열리면서

병색이 완연한 로만 칼라를 한 사제가 들어왔어요.

머리에는 털모자를 쓰고 있었고, 배가 복수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조용히 제대 위로 올라왔는데 미사 시간 내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어요.

처음에 누군지도 몰라서 미사 끝나고 제의실에 가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몸이 많이 안 좋으신 것 같네요.”

그 신부님이 자신을 소개하는데 자신은 의과대학 졸업하고

살레시오 수도회에 들어가서 로마에서 2000년에 사제서품을 받고

수단으로 가서 8년 동안 의사와 사목자를 같이 하다가 8년 만에 휴가를 내서

한국에 돌아왔는데 돌아올 때부터 피를 쏟았대요.

‘내가 콜레라에 걸렸나보다!’

와서 검사를 해보니까 온몸이 말기암이더래요.

8년 동안 매일같이 하루에 3~400명의 환자를 돌보았대요.

기를 다 빼앗긴 거예요. 아시다시피 수단은 내전이 심한 곳이에요.

야외에서 미사 할 때 로켓트가 수십 발이 막 날아온대요.

에이즈가 많은 나라에요.

그 나라는 에이즈에 걸리면 특별히 구호물자를 더 준대요.

어느 날, 엄마가 딸을 데리고 와서

“우리 딸이 에이즈 걸린 것 같으니 검사 좀 해 주세요.”

검사를 해 보니까 에이즈가 아니라 나쁜 피부병이었대요.

그런데 에이즈가 아니라고 하니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울더래요.

‘내 딸이 에이즈에만 걸리면 구호물자를 더 탈 수 있는데....’

그런 나라가 바로 수단이었어요.

거기서 그 젊은 신부님은 의사로, 주말에는 사제로 살았대요.

음악을 잘해서 그 수단 사람들 밴드를 조직해서 미사 때 같이 노래 부르고,

“아빠! 아빠...” 소리를 들으며 8년 동안 기를 다 빼다가 병이 든 거예요.

그 신부님 하는 소리가

“신부님의 테입을 수단에서도 들었습니다. 그 테입을 번역을 해서 수단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신부님의 강론을 많이 전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가면 신부님을 꼭 뵙고 싶었고,

신부님 계신 성지에 오고 싶었는데 이렇게 병이 들어왔습니다.“

그 신부님이 다음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그 말을 읽었어요

'신부님, 저 좀 살려주세요... 여기 오면 살 것 같아서 왔어요'

신부님을 모시고 온 신부님의 누님들은 뒤에서 엉엉 울면서

“신부님, 우리 신부님 좀 살려주세요...지금 죽기는 너무 아까워요.

제 동생 신부님 좀 살려주세요.”

마흔 여덟 밖에 안 되었으니까~

그 신부님 머리와 배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서 저는 즉시 느꼈어요.

‘아, 이 사람은 살 사제가 아니다!..성모님이 마지막으로 죽음을

준비시키려고 엄마 집으로 부르셨구나!’

그 느낌과 확신이 왔지만 저는 그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 신부님에게 예수님의 눈처럼 눈으로만 이야기했어요.

'죽음 준비를 시키려고 당신을 부른 것 같소!‘

내 무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 신부님은 제 눈을 보고 눈물을 주루룩~ 흘렸어요.

“저 신부님 봤으니 되었습니다.”

“기력이 된다면 한 번 더 오세요.”

부축을 해 주고...그 신부님은 떠나갔어요.

눈이 많이 오던 날 사무실을 통해서 연락이 왔는데

신부님이 여기를 너무나 오고 싶어 하시는데 복수가 차서

도저히 올 수가 없으니 신부님께서 한 번만 와 주시면 안 되겠냐고~

그때는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시간이 되면 한 번 꼭 가보아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인터넷 카페에 들어 가보니

‘이태석 사제 선종’ 이란 기사를 보고

‘아, 내가 한 발 늦었구나!’

그분이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던 이야기가 쫘~악 나왔는데

성인처럼 정말 훌륭하게 비록 8년 밖에 사제생활을 못 했지만

수단의 불쌍한 사람들과 같이 예수님이 되어서 산 모습을 보니까 너무 존경스러운 거예요.

저는 밤 10시가 넘어서 빈소를 찾아갔어요.

도착하니까 밤 12시가 다 되었는데 다음 날 장례미사를 준비하느라고

빈소는 이미 치워지고 신부님은 작은 방에 제의를 입혀 뉘어놓았어요.

여기 올 때와 똑같이 털모자를 쓰고, 제의를 입고, 얼굴은 새카매가지고

뼈와 가죽만 남아있었는데 얼굴은 편안해 보였어요.

저는 그 신부님 곁에 가서 돌처럼 차디찬 머리에 손을 대고

'신부님 내가 왔소, 살아 있을 때 못 와서 미안하오! 당신이 산 8년은

다른 사제의 50년보다 더 뜨겁게 살았소, 순서로 따지면 신부생활 30년을 한

내가 먼저 가야하는데... 아마 지금쯤 예수님 성모님 만나고 성모님 주치의로 계실 테니 부럽소..

나도 언젠가는 따라 갈 테니 가서 내 이야기 좀 전해 주구료.'

강복을 주고 돌아오면서 차를 몰고 캄캄한 밤을 헤치고 오는 그 밤은 갈 때는 정말

마음이 슬펐지만 올 때는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벅차서 돌아올 수가 있었지요.

사람이 살아 있느냐~ 죽어 있느냐는 시간과 양의 문제가 아니에요.

신부생활 8년을 하더라도 뜨겁게 살아있는 사제의 삶을 산 사람이 있고

은경축, 금경축을 지나도 죽은 사람처럼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주님께서 기뻐하는 봉헌은 형식적인 봉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봉헌이에요.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비좁고 힘들게 쭈그리고 앉아 있는 이유는

살아있는 제물을 바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기뻐할 제물을 바치기 위해서 온 것이지요.

‘주님 가지고 계신 것 내어놓으시오.’

이렇게 맡겨놓은 것 찾으러 온 것처럼 건방을 떨 것이 아니라

‘주님, 죄인입니다..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우리들 중에 은총을 받을 만큼 마땅한 자격이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우리들은 다 죗덩어리 인간이에요.

그럼에도 불러주신 이유는 뭐겠습니까?

잘 아시지요?

세리와 바리세이의 기도

죄 많은 세리는 성전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고개도 못 쳐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말만 했습니까?

‘주님, 죄인 왔습니다..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결국 그날 의인으로 인정받고 돌아간 사람은 스스로 의인인척 했던

바리세이가 아니라 끝없는 자비를 청했던 세리였어요.

그러니 제발 이 성전에 들어와서 자리 가지고 싸움 좀 하지 마세요.

아이고~~ 여러분들 티격태격하는 것, 사제관에서 모니터로 다 봐요.

어떨 때는 정말 뛰어나오고 싶어요.

그리고 왜 남이 갖다 놓은 것, 내어던져요?

그 사람은 그 자리 맡으려고 어제부터 오고, 새벽부터 와서 맡았는데

오후 늦게 온 사람이 왜 남의 짐을 집어던져요?

그러면서 “당신이 뭐 이 성당 샀냐고~”

이 안에 다 죄인들만 있으니까 자비를 청해야지요.

죄인들이 와서 성모님 앞에서, 감실 앞에서, 언성을 높이고...

그 자리 때문에~~ 맘 편하겠어요?

상대편 가슴에 칼을 찔러놓고~~좀 불편하게 지내면 어때!

그리고 내가 맡아 놓은 것, 남이 또 좀 치우면 어때요?

우리들이 하느님께 온전히 산 제물을 봉헌하려면 쉬운 게 아니에요.

성지에 와서조차 마음이 상하기 때문에~

성지를 향해서 떠날 때부터 마귀가 달라붙어서 따라와요.

‘저거 어떻게 하면 오늘 기도 찬미의 밤 망치게 할까?’

오늘 이 성지에 와서 맘 상한 사람, 상처받은 사람 이 순간 다 잊어버리고

‘주님 죄인입니다..제가 오늘 또 걸려 넘어졌습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자비를 청하는 자에게만 자비와 치유와 구마와 전대사의

은혜가 내린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아멘

♧ 2010년 2월 06일 -기도와 찬미의 밤(느티나무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