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6 17:55:34 , 14779 조회
written by 재경후원회
안녕하세요!
어느새 겨울이 성큼 다가와 이미 첫눈도 내리고 날씨도 자전차로 다니면 장갑을 꼭 끼어야 될 온도지요.
벌써 30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씁쓸한 미소가 입가에 맴돕니다.
1986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분위기에 캐롤송이 울려 퍼지는데 신경질나게 저희들은 근무를 해야 했습니다.
현대자동차판매써비스주식회사 전주사업소에 근무하던 저는 년말 프로모션과 판매실적 때문에 전직원 출근이라는 판매과장님의 말씀에 모두 풀이 죽어서 출근을 했습니다.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이런날 어디가서 판촉활동을 해야 하는지 동기들 7명이서 얘기를 나누다 나는 오후3시에 코아호텔 커피숍에서 맞선 보기로 했다며 크리스마스 선물로 예쁜 아가씨를 만났으면 한다고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몇일전부터 어머님께서 참한 아가씨가 있으니 선을 보라하시면서, 5남매중에 외동딸이고 국민핵교 선생님이라면서 꼭 약속시간에 나오라 하셨거든요.
그리고 둘이서 직접 만나 보라면서 중매쟁이도 양가 어머님도 안오신다고 하십니다.
오전에 대충 몇군데 갔다가 식사하고 10분전쯤 커피숍에 나갔다가 3시가 넘어도 별다른 기색이 없어서 혹시 옆에 있는 코아백화점 커피숍하고 혼돈했나 싶어서 호텔밖으로 나오는데 웬 어여쁜 아가씨가 혼자서 호텔커피숍쪽으로 오길래 살짝보니 괜찮아 보였고 저정도면 평생 함께 해도 되겠구나 하며 가던 말걸음을 멈추고 되돌아 뒤따라 들어가니 잠시후 안내판에 오재경씨라고 써서 들고 종업원이 찾기에 그래 역시 내짐작이 맞았구나 하면서 같이 인사를 나누고 차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뭔가 통하는 구나 땡 잡았네! 속으로 생각하면서 자리를 조용한 인근 커피숍으로 옮겨서 야그를 더하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앞장서 걸으면서 오늘 성탄절인데요, 우리 회사는 근무중입니다.
저야 카세일즈맨이라서 고객만나는 게 일입니다.
신입사원이라 실적도 없고 형편이 말이 아니라고 하면서 커피숍에 들어갔는데 조금 분위기가 있어서 어둠침침 하더라구요.
무슨 말을 했는지는 별로 기억에 나지 않지만 기술장교 출신이고 과대표등 역활을 많이 했고 워낙 언변이 좋은지라 아가씨가 지루해 하지않고 5시30분까지 있었고, 6시에 귀사해서 실적 보고 미팅이 있다며 잠시만 기다리면 신과장님께 말씀드리고 오겠다고 혼자 두고 회사에 갔습니다.
어짜피 실적은 없고 사실대로 불고 신과장님께 지금 아가씨가 기다리고 있으니 뭔저 가겠습니다. 그리고 또랑에 가서 칼질이라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며 데이트비용을 가불해 나오면서 동기들에게 백화점옆 포장마차에서 쐬주 한잔 하게 오라고 하고 닭발에 한잔하면서, 오늘 상황을 얘가하고 동기들 송년회겸 부부동반 저녁모임을 오늘 당장하자고 제의하고 잘되게 도와 달라고 하였고, 5명은 결혼했고 1명도 약혼한 애인이 있다며 지금 즉시 연락해서 준비하여 7시30분에(전주는 그당시 아담한 도시여서 이동에 시간이 별로 안듬) 또랑 페전트에서 14명이 만나기로 하였고, 커피숍으로 가서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저녁도 함께 해야 하겠습니다.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또랑으로 함께 가게되었고 아가씨는 성탄절이고 저의 당돌함에 이끌려 별저항없이 동기 모두 함께 식사를 하게되었습니다.
화기애해한 시간이 흐르고 기왕 송년회겸 모임이고 오박사 잘되라고 전주에서 제일 높은 빌딩인 우석빌딩 라운지에 있는 나이트클럽에 가게되었습니다. 모동기 부인은 거의 만삭인데도 나이트까지 함께 가게 되었고 신나게 디스코 추다가 블루스곡이 나오면 붙잡고 발도 밞으며 환상적인 시간을 보냈고 11시30분 쯤 너무 늦어서 장모님께서 성질내시겠다며 택시로 모시고 태평동 처가가 될지도 모를 한옥집으로 데려다 주는데, 골목이 상당히 길었고 가로등은 있지만 약간 어두웠고 늦은 시간이라 오가는 사람도 없기에 과감하게 꽉 붙들고 입술을 훔쳐는데, 이술이 제일 맛있는 달콤한 입술이구나 하면서 제법 길게 키스를 해뿌렸지라이, 그럼시롱 당신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소 아까 호텔앞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소, 그래서 오늘 이렇게 늦게까지 급작스럽게 모임을 주선했고 모두가 협조해 주었소 하니 그러겠다고 승락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장모님께서는 처음 만나서 이렇게 늦게 보내니 끼가 있나보다, 더군다나 6남매중 막둥이라서 선을 보았는데 자동차 외판원이고 오빠친구도 그일하다 노름하고 큰 빛도 졌다느데 하면서 달갑게 생각지 않으셨지요.
그렇지만 나는 기왕에 밀어 붙일때 세게 나가자하고 어머님과 아버님 그리고 작은 형님이 계신 아파트로 이틀후인 27일에 함께 가서 인사를 드리고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아버님께서 아가씨를 잘보셔서 마음에 들어 하셔고 아마 국민학교 선생님이고 얌전하게 생겨서 이겠지요 그래서 더욱 만남이 자연스러워졌지요.
그런데 얼마후 판매과 회식에 가족도 초대했고 나는 앞날을 약속한 사람이라며 아가씨를 모셨고 기분이 좋아 과음하게 되었고, 선배께서 걱정된다며 아가씨를 모셔다 드렸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어 선배와 싸우게 되었고, 첫만남시 바라다 주어서 알고 있는 그집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 하나뿐인 남동생이 나왔고 사정없이 밀치며 누나 나오라고 해 하면서 몸이 허약한 처남이 땅바닥에 넘어지는 일이 생겨서 장모님께서 인근 파출소에 신고하셔서 순경아저씨가 오게되자 아가씨가 나와서 선보고 알게된 분인데 술김에 그런것이니 그냥 알아서 할테니 가세요 하고 일단락 시켰지만 장모님께서는 막둥이라 저만 알고 그직업이 고객들과 만나서 술먹고 때로는 그때 한창 유행이던 접대고스돕도 치고 해야되는데라 그렁갑다. 하시면서 완강하게 반대하셨지만, 우리는 더욱더 서로를 위하게 되었고 장모님 안계실때 집에도 가게 되었고 매일 회사앞 지하다방에서 만났고 그렇게 사랑이 무르익었고, 딱 일년 가까이 되던 1987년 12월 10일 아무래도 결혼 할려면 미리 혼인신고부터 해야할것 같다는 나의 의견에 아가씨가 흔쾌히 응해 주었고 남원 시골 본적지에가서 친구를 증인으로 세우고 혼인신고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우리집에서 12월 27일로 결혼일을 잡았고 결혼식장과 제주도 신혼여행예약하고 우신임대아파트 401호 계약하고 신혼예물도 내가 준비하고 청첩장을 우리집은 모두 보내고 처가집은 한장도 주지 않았는데, 학교 선배여선생님께서 외동딸인데 어머님께는 알려야 평생 후회안한다며 권유했고 일주일전에야 장모님께 집사람이 말씀드렸고 방학기간이라 학교 출근은 안하니까 장모님께서 방문에 열쇠를 잠그고 아예 출입을 못하도록 하는 바람에 긴급하게 큰누님과 교직에 계신 큰형님께서 함께 태평동 처가집에 가셔서 면담을 요청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였고, 작은 처남이 교대 후배여서 만나서 협의를 했지만 장모님께서 절대 안된다며 완강히 거부하셨고, 결국 우리집에서 예비신부를 감금해 놓았으니 신부없이 결혼식을 할 수 없으니 최종 12월 23일 수요일에 자정이 넘도록 가족회의를 하였고 시체하고라도 결혼하겠다 경찰을 투입해 신부를 빼내오자 하였으나 그렇게 할수 없다며 당장 내일 아침부터 전화로 사정이 있어서 결혼이 취소되었다며 청첩장 보낸곳으로 연락하기로 최종 합의를 보았고 처남에게도 늦은 시간이지만 연락을 하였는데 결국은 내가 가족들 앞에서 이미 혼인신고를 하였으니 처남에게 내일 법원앞으로 이혼서류 준비해서 만나자고 지금 당장 전화하세요. 하고 말씀드리니 정말 혼인신고를 했냐기에 신고하고 받은 서류를 보여주니 즉시 처남에게 내용을 알리자 여동생에게 확인한후에 지난10일 함께 가서 신고하였다하자, 잠시 기다려 달라는 긴급한 목소리가 전화통에서 울려왔고 우리는 잠시 기다리니 그렇다면 결혼을 진행합시다. 다만 우리는 이제 청첩장을 보낼 시간이 없으니 내일 당장 전화로 꼭 알려야 할 친인척에게 연락하기로 하였답니다.
완전한 KO승이었지만 장모님의 아픈 마음을 달라기 위해서 이틀후인 성탄절에 태평동 처갓집 마당에서 석고대죄를 드리고 결혼승낙을 받기로 하였고, 교대 선후배인 큰형님과 둘째처남과 셋이 만나서 소주 대클라스로 두잔하고 저는 처가집에 마당에 석고대죄를 드리고 두분은 계속 술을 마시고 계시는데 옷을 내복과 몇벌을 껴입었지만 어찌나 춥던지 저녁7시에 시작해서 4시간 뒤인 11시쯤 장모님께서 내다 보지도 않으시고 방에서 목소리만 들려주십니다. 이모부가 한일고등학교 이사장이라는데 학교 기술선생님으로 가던지 공대 출신이니 6개월 이내에 즉 내년 6월 까지는 전기통신공사로 직장을 옮기겠다고 약속을 하면 결혼을 허락하겠네 하십니다. 저는 이미 사지가 얼어 붙었고 너무 떨어서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엉엉 울면서 꼭 그렇게 하도록 약속을 드렸습니다. 그때 무릅과 다리에 동상이 들었고 지금도 무릅 관절은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결국 결혼식 진행되었고 비디오 촬영을 하였는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저와 집사람으로 인하여 모두가 숙연해 하였지요. 부곡화와이를 거쳐 제주도로 달콤한 신혼여행을 다녀왔고 약속대로 이듬해 88년 6월13일 현대자동차에서 처음으로 판매직이 송별퇴임식을 받았고 다음날인 14일에 한국전기통신공사 마포 중앙전산소에 6급 전기기술직 특채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은 대학을 졸업하고 맨처음 금성팩토링판매주식회사와 가전3사 판매서비스주식회사을 거쳐 원광대학교 학생처 교직원과 이리동양공예사 품질관리과장으로 몇 번 째 직업을 바꾼 경험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동기와 셋이서 자취방을 얻어서 매식하면서 야간 교대근무라서 일주일에 두 번씩 집에 다녀가게 되었고, 집사람을 서울로 정근 보낼까 하다가 2년이내에는 전보발령을 받을 수 없지만 인사부장님께 여러 사정을 말씀드리고 89년 10월에 김제전화국으로 내려오게 되었고, 집사람은 6개월 신혼살림 하다가 내가 서울로 가는 바람에 부모님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지금도 90세 어머님과 살고 있습니다.
회사생활에 이런저런 어려움도 있었으나 2000년 3월에 과장으로 진급하였고, 2002년에 여러 상황으로 KT고대 MBA에 6개월 전일제를 가게되었고, 돌아오는 2003년 1월 1일 여러상황을 고려하고 안디옥교회와 호성동성당 중에서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1월 1일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해 부활절에 영세를 외짝교우에 한해 특별교리를 통해서 단기간 공부로 성사를 주시겠다는 현유복신부님의 말씀을 집사람에게 전했더니, 여보 내가 성심여중 다닐 때 미카엘라로 성사를 받았는데 친정 어머님께서 중앙성당을 못다니게 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냉담하고 있어서 한번도 얘기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제가 맨처음 성당을 가게된 것은 전방 5사단 방공포대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1982년 같은 부대에 근무하던 고등학교 후배의 인도로 12월 31일 자정에 송년미사를 하던 서부시장 인근의 용머리성당인지에 가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외짝교우로 영세를 받았고 집사람도 냉담을 풀고 김태윤신부님께 관면혼배를 받았고 지금은 나름 정성을 다하고 제1번에 주님을 모시고 믿음으로 더욱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그리도 사랑하는 며느리와 함께 사시다가 벌써 17년전에 하늘나라에 가셨고, 아들은 11월 30일 공군 학사장교 중위로 전역하고 12월 1일 초등학교 신규발령을 받아 출근하고 있습니다.
저는 퇴직하였고 집사람은 이제 어였한 교장선생님으로 재직중입니다. 물론 공주님은 사대 수학교육과 2학년으로 장학금도 받고 있지요.
그 엄하시던 장모님께서 결혼후 우리 사위 오서방이 최고야 하시며 얼마나 사위자랑을 하셨는지 너무너무 감사한 삶이었습니다.
벌써 세상을 떠나신지 10여년이 되었지만 그 랭랭하던 목소리 그추은 겨울에 4시간 석고대죄 하는데 나와 보지도 않으시고 처렁처렁하시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듯 합니다.
30년 세월이 이렇게 흘러서 12월 26일 환갑날입니다. 27일은 결혼 30주년입니다.
어머님 아버님 장모님 그리고 사내방송에 화목한 가정으로 가정의달에 선정되어 방송에서 하였던 멘트 "노래하면 이미자, 탈렌트하면 사미자, 나 오재경에게는 조미자 당신 뿐이라오!
훌륭하게 군복무를 마치고 국가의 미래를 열어가는 인재양성에 최선을 다할 자랑스런 정현왕자와 멋진 수학자가 될 미래의 교수님 주원공주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은총을 베풀어 주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오해피 오재경 미카엘
김태윤 / 2009-11-17
현화진 / 2009-11-16
이동성 / 2009-11-13
김기훈 / 2009-11-11
김윤채 / 2009-11-03
고충곤 / 2009-11-02
고충곤 / 2009-10-30
박외자 / 2009-10-27
주영승 / 2009-10-27
고충곤 / 2009-10-23